카라의 발자욱/카라의 발길

아산 현충사, 꽃그늘 아래에서

카 라 2025. 4. 14. 09:28

방문일 25. 4. 10
공세리 성당 가는 길에 들렀던 아산 현충사
 
공세리 성당이며 외암민속마을이며 곡교천 은행나무길, 세계꽃식물원
피나클랜드까지 아산을 그래도 두루 다녔는데 현충사는 한 번도 못 갔다.
 
하여  공세리 성당 가기 전에 먼저 현충사로 갔다.
 

주차장은  엄청 넓고 주차하기 좋았다.
관광버스도 여러 대 와있는 걸 보니 지금이 나들이하기에 최적의 날씨다.

 
 

현충사는 국내에서 가장 큰 이순신 장군 사당.

세계기록유산인 ‘난중일기’를 비롯한

여러 문화유산과 이순신 장군이 살았던 옛집 등이 남아 있다.

 

충무공의 숨결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곳,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순신의 숭고한 정신을 기억하고

배울 수 있는 역사적인 명소다.

 이순신의 고향이기도 한 아산 현충사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지킨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곳이다.

 

사천 딸 집에 가면 이순신의 여러 업적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이순신장군의 고향이 아산이구나.."

"그러니까 현충사가 아산에 있지"

"그렇구나..."

 

이런 바보가 바로 나다 ㅠㅠ

 

 

 

 오래전  나를 보는듯한 모습이다.

손주 사랑...

할머니와 엄마,손주  3대의 봄 나들이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온다..

 할머니 손 뿌리치고 혼자 걷겠다는 손주의 고집이 분명하다.

안 봐도 비디오..ㅎㅎ
 

사적 제155호. 1704년(숙종 30) 아산의 지방 유생들이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의 전공을 기리기 위해

사당건립을 상소함에 따라 1706년에 건립했으며, 그 이듬해 '현충사'로 사액되었다.


1865년(고종 2)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이후 황폐화되었다가,

1932년 6월 이충무공유적보존회와 동아일보사가 성금을 모아 중건하여 영정을 봉안했다.

1962년 3월 1일 충청남도에서 경내를 확장하고, 유물전시관을 신축했다.(다음 백과)

 

 
 

 
 

 
 

 
 
 
 

 
 

 
 
 

 
 전시관 곳곳을 둘러보려 했으나 보수 수리를 했는지 

페인트칠 냄새가 너무 심해서  바로 나왔다.


 

 
 
 

 

 
 
 

수양벚꽃과 목련이 한데 어우러져 눈이 부시다.
아무런 할 말을 잃게 한다.

마치 별이 쏟아지듯 꽃폭포가 흘러내린다.

 

내 발걸음은 여기서 딱 멈추었다.

 

그래도 현충사를 왔으니 사당이나 옛집등을 보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남편에게

혼자 다녀오라고~ 난 여기서 꽃놀이나 하겠다고...

현충사를 온 목적이 뭐냐는 남편에게

"꽃놀이"라고 단칼에 대답하니 어이없어한다.

 

이런 풍경과 마주하면

"사진을 배웠어야 했어.."

"지금이라도?"

 

내 블친 작가님들이라면 이 숨 막히는 풍경을 어떻게 담아냈을까?

풀꽃님, 석화님, 그리고 태양님.... 내 블친 작가님들이라면...

 
 

 
 
 

 올려다보니 마치 밤하늘의 은하수를 보는듯하다.
 

 

 
 
 

 

 갑자기 목련꽃그늘 아래 앉아 베르테르의 편질 읽는다

이런 노래가 생각난다.

 

이 글을 쓰며 "목련꽃 그늘 아래"를 검색해보니

 

청록파 시인 박목월은 전쟁 직후에 "목련꽃그늘아래"로 시작하는

사월의 노래를 발표한다.

여기에 최초의 여성 작곡가 김순애가 곡을 붙인 이 노래가 대표적인 봄노래로였다.

이 노래가 발표될 당시 1953년은 전쟁의 폐허와 절망의 시절이었다 

그런데 시인은 새봄이면 언제나 다시 꽃으로 피어나는 크고 화려한 목련을 보고 

찬란한 봄 예찬을 했으니 그 당시 얼마나 이 노래가 인기가 있었을까.

 

4월이면, 봄이면 심심찮게 흘러나오던 노래였지만 젊은 세대는 아이돌에게 열광하고

기성세대는 임영웅에 빠지면서 영 듣기 어려운 노래가 되었다. (네이버에서 발췌)

 

"목련 꽃그늘 아래 선 할아버지.."

"당신도 이 꽃처럼 찬란했던 한 시절을 회상하나요?

"젊은 날의 아련한 추억이라도 떠올리나요?


 

할배도 할미도 다 꽃이 되었다.

그럼요 지금 이대로 우리는 충분히 찬란하답니다.

그런데 할미는 등을 돌렸다

 

 

 
 
 

 
 

천리포수목원 목련 보러 가자는 말이 쏙 들어갈 정도로
목련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목련은 이미 다 지고 연둣빛 잎사귀가 올라온 지 한참 지났는데
여기 현충사는 목련이 한창이었다.
 
 

꽃잎이  큰 만큼 가지에서 뚝뚝 떨어져 여기저기 흩날릴 때는 처연하기까지 하다

화려한 꽃만큼이나 목련의 거침없는 낙화는 찬란한 봄의 가장 슬픈 일이다.

하여 누구는 목련이 지는 것을 죽음에 비유하기도 한다.


 
 

휘이~~ 휘이~~ 늘어진수양벚꽃이

마치 꽃폭포처럼 흘러내린다.

 

 
 
 

 
 


 

어제는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렸다.

 

목련꽃이 많이 떨어졌을 터... 목련이 진자리에는 성가신 봄비의 흔적과 

살랑살랑 봄바람만 남아 있으려나...

젊은 날 우리들의 아련한 추억과 사랑도 그렇게 스며들고 잦아들고

사월이 또 그렇게 지나간다...

 

밤하늘 은하수 별들이 쏟아지는 듯한  수양벚꽃과 목련 아래서

그래도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찬란(?) 한 때라고.. 스스로에게

따듯한 위로를 건넨다.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고... 은혜 아니면 살아올 수 없었던 아픔도, 상처도

다 찬란한 별이 되었다고... 나를 다독인다.

 

"이순신 장군님...죄송합니다."

"다음에 꼭 다시 와서 공부 잘 하고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