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의 발자욱/카라의 발길

[스크랩] 이땅의 들풀이여..청양 줄무덤을 찾아서

카 라 2008. 10. 31. 11:26

 

이땅의 들풀이여...청양 줄무덤을 찾아서

충남은 신앙의 못자리가 아닐까요?
천주교에서 내포의 사도인 이존창의 합덕이 있고,
김대건신부님의 생가와 죽음의 칼을 받았던 해미읍성이 있으며,
생매장터 여숫골과 공주의 황새바위,
이역만리 조선땅에서 순교한 프랑스 신부님의 갈매못도
그 혹독했던 시기에도 굽힘없이 신앙을 증거하고 있답니다.
"순교자의 벨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지요.

박해시절 수 만명이 죽어갔어도 이 땅의 천주교는 꺽일줄 몰랐답니다.
오히려 죽으면 죽을수록 신앙의 힘은 활화산처럼 커져갑니다.
주님의 섭리가 참 오묘하다는 것을 느낀답니다.
세계 교회사에서 한국천주교회만큼이나 희생과 아픔이 많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선조를 가지고 있어서 자랑만 해서는 곤란하겠지요.
오늘날 교회는 많아졌지만 기도는 줄어들었고,
신자수는 늘어났지만 신앙심은 모래성처럼 쉽게 허물어지니 참으로 아쉬울 따름입니다.

저부터 그렇습니다.
일 핑게되고 주일미사도 빠지고 기도하는 시간이 영 어색한 시간이 되어버렸답니다.
그래도 전국을 유랑하면서 성지가 보이면 꼭 들리게 됩니다.
사막의 오아시스만큼이나 정신적 갈증을 해소 하고 갑니다.
주님께서 절묘한 시기와 장소에 저를 이끌고 있다는 것을 훗날 정리하면서 깨닫게 된답니다.

"내가 간 것이 아니라 내가 이끌려 간 것이구나."

장곡사를 취재하고 청양을 거쳐 보령으로 넘어갑니다.
거기서 예쁜 화단이 차를 멈추게 합니다.
새로 국도가 놓이면서 쓸모없는 예전 길을 장미덩쿨로 꾸며 놓은 것이지요.
꽃사이로 지나가는 느낌이 얼마나 좋은지 아십니까?

화단옆 고추밭에 물을 주고 있는 농민부부를 만났습니다.

"여기 심은 고추가 청양고추겠네요.
그럼 무지 매운 고추겠네요."

"요새 도시사람들이 매운 것을 좋아하겠어요.
덜 매운 고추를 심어야지 고추가 팔리지유."

왠지 그 순박한 부부에게 시원한 생수 한병 드리고 싶었습니다.
갈증을 풀고 다시 고추밭으로 들어갑니다.
석양에 비친 그들의 모습은 거룩한 성화처럼 순결하더군요.

최경환 프란체스코 성인 그리고 이성례 마리아

서해안에서 가장 높은 산인 오서산 자락에 다락골이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오지중에 오지라고 해도 좋을 듯 싶습니다.
너른들판이 펼쳐져 있는 충남에 이런 산골이 있는 줄은 몰랐지요.
지형이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다락처럼 생겼다고 해서 다락골이라는 이름을 얻었답니다.
최양업 신부님의 뜻을 기려 그 곳까지 가는 길을 "양업로"라고 했더군요.

최경환(1805-1839) 성인은 우리나라 두 번째 신부인 최양업신부님의 아버지 되시는 분입니다.
천주교를 믿고, 신부인 아들을 두었다는 이유로 온갖 고초를 당하신 분이지요.
그런 배경 때문에 그의 가족사는 골고다언덕을 거니는 예수님처럼 고통의 연속이었지요. .

서울 벙거지골,강원도 춘천, 부평, 경기도 수리산등 신앙을 누릴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찾아갔던 것이지요.
결국 1839년 기해박해때 포졸들에게 붙잡히고 맙니다.
교우촌에서 한 명씩 차출되어 끌려 갔지만 최경환만은 아들을 마카오 신학교로 보냈다는 이유만으로
아내와 젖먹이 아이들까지 모두 7명이 옥에 갇힙니다.
최경환은 온갖 고문과 유혹에도 굽히지 않고 고문을 당하다 죽고 맙니다. 그의 나이 35세랍니다.

무엇보다 저는 그의 아내이자 최양업신부님의 어머니인 이성례마리아를 뇌리에서 지울 수 없답니다.
마리아의 세례명만큼이나 슬픈 삶을 보내셨습니다.
그녀는 남편과 함께 옥에 갇혀 가혹한 고문과 회유에 시달렸습니다.
그 지옥같은 감옥안에서 5명의 아이들과 공포와 굶주림을 이기며 신앙을 지켰답니다.
고문 때문에 그녀의 젖꼭지는 말라비틀어졌고 썩어빠진 고름이 줄줄 흘렀답니다.
결국 세 살난 젖먹이 스테파노는 끊어진 젖을 빨다가 굶어죽게 됩니다.
이러 어머니의 비통함이 오죽했겠어요.
목숨만 부지하고 있는 네명의 아이들도 그렇게 죽어가야할 생각을 하니 겁이 덜컥 난 것입니다.
그리고는 목숨보다 소중한 신앙을 버리고 배교를 선언합니다.

"우리 아이들을 살려주세요."

감옥에서 풀려난 후 그녀는 뼈져린 후회를 하게 됩니다.
주님과의 약속, 남편과의 약속도 모두 어겼으니 얼마나 가슴 아프겠습니까?
그러던중 아들 최양업이 신학공부를 한다는 사실이 알려져 다시 감옥으로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헤어지면서 네 아이들에게 신신당부를 합니다.

"절대로 성모님과 천주님을 잊지 말아라,
서로 화목하게 지내며 떨어지지 말고 맏형이 올 때까지 용인 큰 아버지에게 가서 살아라."

그 부모의 그 아들이랄까요.
아이들은 용인으로 가지 않고 옥바라지를 합니다.
떨어지지 말라는 어머님을 말씀대로 넷이 노끈으로 칭칭 동여매고 구걸을 하며 어머니를 공양한 것입니다.
하루는 형리를 통해 인절미가 들어왔는데 손때가 까맣게 묻어 있는 것입니다.
어린 자식들이 고사리같은 손으로 만지작 거리며 먹고 싶은 것을 참고 어머니께 넣어진 것입니다.

마리아의 사형집행일 다가왔습니다.
둘째아들 야고보를 불렀습니다.
"이제 내가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절대로 어미의 죽는 모습을 보지 말고 용인으로 가라. "
그리고는 야고보의 손을 잡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죽고 싶어도 죽지 못하는 어머니의 심정

야고보는 그 길로 휘광이를 찾아가 그동안 동냥해서 모은 돈과 쌀을 바치며 부탁합니다.

"우리엄마 이제 죽게 되었으니, 죽을 때 아프지 않도록 목을 한번에 잘라주세요."

휘광이도  아이의 말에 감동받고눈물을 흘리면서 밤새 칼을 새파랗게 갈았다고 합니다.

다음날
네 자식들은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도 거부한채 어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 용산의 당고개 형장에 몰래 숨어 찾아갑니다.
그리고 거룩한 어머니의 죽음을 바라봅니다.
약속대로 휘광이는  한칼에 어머니의 목을 베었습니다.

그걸 본 네 아이들은 벌떡 일어나 무명저고리를 벗어 하늘로 던지고 손벽을 치면서 하늘을 향해 외쳤답니다.

" 우리 엄니 목이 단칼에 떨어졌다.
이제 우리 엄마는 천당에 가셨다."

그 광경을 보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전해집니다.

이성례 마리아님은 진정한 마리아님이시고 그 아이들 역시 예수님이세요.
아멘

최경환, 이성례부부,
그리고 아이들 희정, 선정,, 우정,신정 그리고 젖먹이까지 단란하게 살았던 생가터를 둘러보았습니다.
신앙을 찾아 당진의 옥토를 버리고 이 먼곳까지 찾아 왔습니다.
어려운 환경에도 신앙을 지키며 땅을 일구며 살아갔겠지요.
지금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은 없고 잡초만이 무성합니다.
신앙의 열정이 잡초로 다시 살아 난 것이겠지요.

이 땅의 신앙은  이름모를 잡초나 들꽃만큼이나 아름답지 않습니까?

양업로를 따라 700미터 산으로 더 가면 다락골이 나온답니다.
이 뒷산에 이름모를 순교자의 줄무덤이 있답니다.
입구 성당에서 300여미터를 올라가야 합니다.
함께 동행한 비신자 달새님께 미안하더군요.
서해의 노을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이곳까지 오르면 일몰사진을 놓칠 수 있거든요.

"형님 올라가봐야 무덤 몇 개 있는데 오르지 말지요."
미안해서 한마디 던졌습니다.

"일몰이야 자주 찍지만 무명순교자를 만나는 일이 쉬운감"
그러면서 카메라 장비를 챙기고 산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

예쁜 대숲을 지나 힘차게 산을 오릅니다.
땀이 비오듯 쏟아집니다.
성스런 땅을 힘차게 내디딜 때마다 "아멘"하고 외쳤습니다.

두 팔 벌린 주님을 뵈었더니 가슴이 찡합니다.
이 곳이야말로 겟세마니 동산이 아니겠어요. 이곳까지 미천한 저를 맞아주시다니..

드디어  무명순교자 묘비앞에 섰습니다.
무릎을 꿇고 두손을 모았습니다.

이름모를 순교자들이여...

줄무덤은 한 곳이 아니라 세 군데랍니다.
무명순교자의 무덤수는 총 37기랍니다.
누가 어디서 죽었는지는 모릅니다.
홍주감영과 공주 황새바위에서 순교한 교우이거나 해미나 갈매못에서 순교한 천주쟁일겁니다.

그들은 배운 것도 없습니다.
들풀처럼 자라나 순리대로 살았을 뿐입니다.
진리를 먼저 알게 되었고 그걸 실천했던 죄밖에 없었지요.
그 들이
흘린 피의 대가로 지금 우리는 신앙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답니다.
목이 잘려나가고 사지가 흩어져도 주님이 지켜준다는 믿음 하나만으로 목숨을 내던진거랍니다.
아멘

포악한 포졸들이 어머니를 끌고 갔을 때 울음을 떠트리는 아이들에게 "얘야..지금 죽어야 천당간다.
훗날 다시 보자."
오히려 아이들을 위로하며 순교의 칼을 받았던 이름없는 민초들의 무덤입니다.
묘비를 어루만졌습니다.
저는 지금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를 만지고 있답니다.

제단이 보입니다.
널부러진 통나무에 앉아 미사를 봉헌하겠지요.
꼭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고 싶네요.

항아리처럼 우직함을 말해주는 그릇이 어디있을까요?
그곳에 생명수가 담겨져 있을 겁니다.
이땅의 신앙인들은 옹기장사를 하면서 옹기안에 성경책과 묵주를 숨기며 복음을 전파했답니다.

하산하면서 14처가 그려진 항아리를 만났습니다.
내 항아리에 뚜껑을 열고 신앙심과 진리를 가득채워야 할텐데....
우선 깨진 항아리부터 붙여야겠어요.

이 첩첩산중에서도 주님의 십자가가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주님!!

순교자가 되지는 못해도

이 땅의 순교자가 여전히 살아있음을 알게 하소서.
아멘

다락골 줄무덤 정보

문의전화 : 041-943-8123

서해안 고속도로이용시

1) 서울쪽에서

 — 광천 I.C에서 나옴. 청양군 방면으로 96번 국도를 따라 25분 오면 옥계삼거리

 — 옥계삼거리에서 화성,보령 방면으로 3분오면 이정표있음

2) 목포,광주,전주쪽에서

 — 대천 I.C에서 나옴, 공주,청양 방면으로 30분오면 오른쪽 이정표있음

 

경부고속도로 이용시

1) 서울쪽에서

 — 천안 I.C에서 나옴. 아산(온양) 쪽으로, 다시 예산으로, 다시 청양으로

 — 청양에서 대천 해수욕장 방면으로 8Km오면 오른쪽에 이정표있음

2) 부산,대구 쪽에서

 — 부산에서 오실땐 진주,통영에서 대전 방면 고속도로 이용. 유성 I.C에서 나와서
     공주,청양, 청양에서 대천해수욕장 방면으로 8km 오시면 오른쪽에 이정표 있음

 — 대구,부산에서 오실땐 회덕분기점 호남선으로 차선변경. 유성 I.C에서 나와서
     공주,청양, 청양에서 대천해수욕장 방면으로 8km 오시면 오른쪽에 이정표 있음

=옮긴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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