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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배도 반한 유라시아 대륙의 끝 까보다로까 ^^


에그타르트의 원조라 불리는 리스본 에스타르트 본점에서 그 귀한(?)

이그타르트 한 개도 아닌 반을 먹고  ㅠㅠ 버스에 올라  유라시아 때륙의 땅 끝 마을로 간다


한반도에 도착한 최초의 서양인이 주앙 멘데스라는 포르투갈 사람이었다는 인연 외에도,

리스본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에 위치한 까부가로까 곶은 땅끝 마을 해남을 가지고 있는 한국 사람들로서는

꼭 가봐야 하는 이정표이기도 하다고,




지구상에 다른 대륙이 존재하는 줄 몰랐던 14세기 말까지 이곳은 완전한 ‘대륙의 끝’이라 여겨졌고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끝’이라 불린다.



아프리카 채송화가 언덕 가득 피어 있고...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 되는 곳" 이라고...

포루투칼의 국민 시인이자 정신적 지주인 카몽이스의 싯귀가 새겨져 있는 글이라고...

재미있는 것은

까보다르까의  위치가 우리나라 38선과 같은 위도인 38도 라는것

그리하여 이 곳에서 계속 나가면 우리나라 강원도에 닿는다고 가이드가...


유럽 대륙의 이베리아 반도 그 반도 내에서도 서쪽 끝을 지키고 있는 나라가 바로 포루투칼이다.

대서댱을 마주하고 있는 포르투칼은 대서양을 발판삼아 15~16세기 당시 서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지니며

해양왕국으로 대성했다.


이 포르투칼에서 대서양이 가장 먼저 시작되는 곳이 바로 땅긑 마을로 알려진 까보다로까다.



비가 올 듯...빗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는 아주 흐린 날이다.

바람이 얼마나 거세게 부는지 사진 찍다가 뒤로 나자빠질 지경이다.



이 등대가 세계에서 3번째로 오래 된 등대라고..



끝간데 없이 이어진 대서양을 뒤로 하고.....




우리나라의 제주 섭지코지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그렇다.


이쯤에서 가이드에게 들은 리스본 대지진 이야기를 하고 가야겠다..


 #리스본 대지진#

1755111'모든 성인 대축일'[2][3] 오전 940, 지진이 리스본을 강타했다.

최초의 진동은 약 5분간 지속되어, 리스본의 건물 대부분을 무너뜨렸다.

축일을 맞아 초만원이었던 성당 안의 신자들이 일차적으로 참사를 당했으나,

포르투갈 왕실은 개인사로 인해 리스본을 잠시 비운 상황이었고, 귀족들은

관례적으로 약간 늦게 미사에 참례했기에 도착이 늦어져 화를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진의 상황은 끔찍했었다. 지진이 불어 닥치기 전까지는

리스본은 교회의 행사와 사람들이 몰려드는 가운데 그들이 곧 자연재해를 맞이할 거라는

생각하지 못하고 축제에 들떠 있었다.

그러나 지진이 강타하자 축제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반전이 되어 공포와 비명으로 변했고,

교회의 스텐글라스가 깨짐과 동시에 축사를 위해 설치해둔 촛불들이 넘어지면서

곳곳에 화재가 일어났다.

 


거의 모든 건물들이 붕괴하는 아비규환 가운데 살아남은 사람들은 건물이 없는

탁 트인 곳이 안전할 것이라 판단하고 부두와 강 등 물가로 몰려갔다.

하지만, 이런 희망을 기대하고 그들을 맞이한 것은 바다 지평선에서 몰려오는 해일이었다.

이미 해저가 드러날 정도로 물이 후퇴한 바다에서 지진 발생 약 40분 후, 거대한 해일이

밀려왔고 타구스 강과 부두, 도심지를 휩쓸었다.

 

사람들은 뒤늦게 항구에서 멀어지려고 도망갔으나 해일항목을 알 수 있듯이

바닷물이 덮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로 인해 간신히 살아남았던 대다수 생존자들도 사망했으며 해일의 근원지는 현대의

지진학자들은 당시 지진이 리히터 8.5~9.0(보통 리히터 8.7) 정도에 달했으리라고

추정하고 있으며, 진원점은 320킬로미터 떨어진 대서양의 카보베르데 제도 해저였으리라

추정하고 있다.




 

그 뒤 해일이 두 번 더 왔고,

이 파도들은 대서양과 마주한 유럽 해안 전체에 퍼져, 아일랜드의 골웨이와 잉글랜드

대부분의 해안에도 영향을 주었다.

해일이 덮치지 않은 곳에서는 화재가 일어나 5일 밤낮으로 타올랐으며,

지진으로 인한 건물 파손과 잇따른 화재는 도시의 중심지를 완전히 잿더미로 만들었으며

당시 생존자들이거나 리스본이 폐허가 되었다는 소식에 강도와 범죄자들이 넘쳐나

한 때 아름다웠던 수도 리스본은 그야말로 혼돈과 무질서함의 도가니 자체로 변해버렸다.

 

국왕이 이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족들과 함께 귀환했다.

그러나 그들이 본 것은 폐허가 된 리스본. 전쟁이 났을 지라도 이렇게 처참하게 부서져

아비규환이 된 수도의 모습은 왕이나 귀족들도 경악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더 심각한 것은 수도의 핵심 장소인 왕궁이 불타 행정체계와 신대륙에서

목숨 걸고 탐험한 모험가들이 그린 지도와 각종 문화 깊은 기록 문서까지 불타 문제가

심각했다.




조세 국왕(D. josé): "이런 재난에 도대체 어떻게 대처하면 좋겠는가?"

카르발류(Sebastião José de Carvalho e Melo)[6]: "죽은 사람은 장례를 치르고,

산 사람은 먹을 것을 주어야 합니다."

 

개인사로 잠시 리스본을 비웠던 동 조세 국왕이 급히 돌아와 보니 리스본은 말 그대로

아비규환이 되어 있었다.

수많은 건물과 주민들이 죽어 도시가 초토화가 된 것도 모자라 여기에 감옥이 파괴되며

범죄자들이 마구 뛰쳐나오며 자연재해로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도시를 더욱 악화시켰다.

도시 곳곳에서 약탈, 강간, 방화행위가 잇따랐다.


도시가 사실상 무법천지가 된 것이다. 실의에 빠진 국왕은 자신이 신뢰하는 카르발류에게

사태의 해결을 위한 전권을 맡겼고, 결과적으로 이는 매우 현명한 판단이었다.



우선 카르발류는 사방에서 날뛰는 도둑들과 강간범들을 붙잡아 즉결재판에 넘기고,

치안의 확보를 위해 지방에 주둔해 있던 군 병력들을 도시로 불러들였다.

행 중 다행으로 재난을 간신히 피한 귀족들과 유력자들이 공포에 질린 시민들을 진정시킨 뒤,

카르발류는 대주교와 긴급히 면담하여 일체의 종교적 장례절차를 생략하고 시신을 수습하는 것에 동의를 받아냈다.

시신의 재빠른 수습은 위험한 전염병이 창궐할 가능성을 막아주었다.


이후 생존자들을 불러 모아서 식량 배급소를 열고 군인들이 직접 대동한 자리에서 식량을

공평하게 배분했다. 모든 것이 정확히 그의 계획대로였다.




 

사람들은 놀랍도록 차분한 태도로 이제 무너진 건물들의 잔해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카르발류는 도시 재건사업을 잠시 보류시킨 뒤,

1758712일에 도시 계획법을 공포하고 이에 따라 재건하도록 했다.

건축이 5년 이상 지연될 경우에는 부동산 구입을 희망하는 타인에게 권리가 넘어갔으며,

대부분의 집들은 귀족들과 부유한 상인들에 의해 지어졌다.

 

모든 것이 질서가 있었고 앞뒤가 맞았으며 순서가 있었다.

카르발류는 리스본을 그 근본부터 완전히 다른 신도시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리스본에 이제 새롭게 지어지는 건물들은 공통점이 있었다.

행여라도 닥쳐올 또 다른 지진에 대비하여 모든 건물은 4층 이상 지을 수 없었고,

"가이올라" 라는 신 건축공법을 도입해야 했다.

포르투갈어로 "새장" 을 뜻하는 가이올라 공법은 건물 벽에 완충재의 목적으로 목제 프레임을 X자형으로

 댄 뒤에 그 사이를 벽돌과 석재, 회반죽으로 채우는 형태였다.

또한 모든 건물은 그 기초 밑에 목재 더미를 묻어두어 건물이 흔들리는 지반 위에서도

유연하게 탄력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

 

또한 거리에 잔해가 쌓이더라도 안전할 공간을 확보하도록,

거리는 이전보다 훨씬 넓은 모양으로 설계되었다. 시내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7개의 대로가

18m 폭으로 깔렸으며 동서 방향으로는 12m의 폭으로 유지되었다.

오늘날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꼬메르시우 광장(Praça do Comércio)이 재건된 것도 이 때의 일이다.




신임 도시설계자로 에우제니우 도스 산토스(Eugénio dos Santos), 마누엘 다 마이아(Manuel da Maia),

그리고 카를로스 마르델(Carlos Mardel)이 임명되었다.

마이아는 예전 런던의 대화재 이후 크리스토퍼 렌(Christopher Wren)이 구상했던 설계도를

기초로 해서 기하학적 구조의 도시를 설계했다.

모든 건축 자재들은 대량양산을 위해 표준 규격을 잡아놓고 신속하게 찍어냈다.

 

물론 반발이 없는 건 아니었다. 자기 땅의 소유권을 잃을까 염려한 서민들,

더 이상 주택으로는 차별성을 기대하기 힘들어지게 되어 자존심이 상한 귀족들이

불쾌해한 것은 당연지사였다.


그래도 당분간은 찍소리를 못 내고 있었는데,

당시의 여진이 카르발류 사후 10년이 넘은 1800년대까지 계속되었고,

지진의 공포가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성직자들은 심판을 무시하고 감히 재건을 했다가 다시 더 큰 심판을 겪게 될까 불안해했다.

심지어 카르발류는 아베이루(Aveiro)를 주축으로 한 일부 귀족들 사이에 반란모의가 있었다는 것까지 밝혀냈고

그들을 엄중하게 처벌했다.

 

시민들의 동요는 군인들이 직접 내리눌러서 통제에 따르도록 했다.

가브리엘 말라그리다(Gabriel Malagrida)를 주축으로 하는 일부 예수회 소속 성직자들이 통제에 따르지 않자

카르발류는 그들을 국외 추방하는 법령을 공포하는 것으로 맞섰다.

 

"...세계 최초로 지진에 관한 객관적 설문조사를 실시한 공식적 시도였다..."

 

카르발류는 여기서 끝나지 않고, 전국의 모든 교구에 다음과 같은 5개의 질문이 쓰여 진

설문지를 돌렸다.


1.지진이 언제 시작되어 얼마나 지속되었는가?

 

2.충격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방향이 따로 있었는가? 예컨대 남쪽인가 북쪽인가?

건물들이 더 잘 무너지는 방향이 있었는가?

 

3.몇 명이나 죽었고 그 중 시체를 분간할 수 있는 이는 몇인가?

 

4.바닷물이 처음에 솟아올랐는가 ? 가라앉았는가?

또 평소에 비해 몇 핸드나 더 솟아올랐는가?

 

5.만약 불이 났다면 불길이 얼마나 지속되었고 그 불길로 인해 입은 피해는 무엇인가?

 

 위의 질문에 대한 사제들의 답변은 오늘날에도 포르투갈 국립문서보관소인

토레도 톰보에 소장되어 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이 지진의 현대 과학적 분석이 가능한 것이다. 종합적으로 이 지진의

최대진도는 XI (Extreme)이고, 쓰나미의 최대 높이는 15 m 정도이다.




비가 내린 뒤땅이 굳어졌다.

역사상 최악의 재난을 겪은 뒤 폐허가 된 한 도시가, 지진대비와 재난관리에 있어 역사에

찬란히 빛나는 모범적 선례로 거듭났다.

 

카르발류의 재난대비 시스템은 리스본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포르투갈 전역의 성직자들은 "지진을 언제, 어떻게 느꼈는지, 얼마나 피해가 컸는지,

여진은 몇 번 있었는지, 귀하의 교구에는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에 대해서

전국가적인 설문조사를 실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여 분석, 참조함으로써 지진에 대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연구를 실시했다.

서유럽에서 해당 지진으로 크고 작은 피해를 입은 다른 국가들은 포르투갈에 사절을

보내서 해당 자료들을 공유하고 교환하며 국제공조를 해 줄 것을 요청하기까지 했다.



다시 태어난 리스본

 

이 때를 계기로 리스본 시가지는 완전히 뒤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는 과거 교회권력에 대한 유럽 계몽주의의 승리이자 도시공학, 건축학의 눈부신 발전,

재난관리의 실제적 경험, 국제공조 시스템, 기타 모든 것들에 대한 성취와 달성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리스본이 너무나 많은 대가를 치르기는 했지만,

이제 리스본은 더 이상 과거의 그 취약한 리스본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 때의 피해를 복구하느라 비용을 너무 많이 쓴 포르투갈은 경제적 황금기가

마감 되었으며 이후 나폴레옹의 침공을 막을 수 없었다.

(나무위키 펌)


세상에 그런 참혹한 지진이 있었다는 게 믿어 지지 않는다.



까보다로까에 있는 작은 기념품 가게...




이렇게 화질이 좋은 사진을  보내줘서

감사해욤...




바닥 가득히 피어있는 아프리카 채송화...


꽃 할배에서 배우 신구님이 비바람을 맞으며 홀로 이곳을 왔다고..

과연 그는 무슨 생각으로 이 곳을 홀로 왔는지..

꽃 할배 다시 봐야겠다.


버스 기사가 가이드에게 물었단다.니네 한국 사람들 참 이상하다 대체 이곳에

무엇을 볼렬고 꼬불꼬불한 길을 3시간 달려와 겨우 20분, 30분 사진만 찍고 가느냐고..


나도 이 생각에 동의 한다.


이 또한 방송의 힘(?)이다...나영석이란 방송 피디 때문인가?

우리는 파티마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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