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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 제암리교회, 그리고 화성 독립운동기념관.
9월의 마지막 날, 9월 30일.. 사실 우리들의 걸음 목적은 제암리교회다
제암리교회는 순교지다.
하여 국내 성지순례인 셈이다.
우리는 안산 대부도 종이미술관, 방주교회를 관람하고 점심을 먹고
제부도 제암리 교회를 갔다.

제암교회는 1905년 8월 5일에 아펜젤러로부터 전도를 받은 안종후가
자신의 집에서 예배 모임을 하면서 시작되었다.
1914년 안 씨 집성촌이었던 제암리 일대에 퇴역군인인 홍원식이 이사를 와
교회의 권사가 되었으며 '서재'를 세우고 애국계몽운동을 하였다.
3·1 운동이 한창이던 4월 5일 안종후, 홍원식 등의 기독교인들과 고주리 천도교인들인 김흥렬, 김성렬
그리고 유학자 이정근 등이 만세시위를 주도하여 발안 주재소 앞에서 만세를 불렀고
이 과정에서 주동자들이 검거되어 고문을 당했다.
일본군은 송산면 사강리와 장안면 수촌리 만세 시위에서 일본 경찰이 살해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이 지역의 교회들과 민가들을 불살랐으며 4월 15일에는 제암리 마을 주민들을
제암교회로 소집하여 교회 안에 가둔 뒤에 총격하고 불을 지르는 만행을 자행하였다.
이때 23명이 희생되었으며, 12명이 기독교인이었다.

우리는 멈춰진 시간과 마주하고 있다.
교회 정문에 그 비참한 죽음을 맞은 분들의 이름이...

제암교회
예전의 모습이 아니고 새로 신축을 하였나 보다.
예배당은 2층이라 하여 2층으로 올라간다.

현대식으로 지은 새 건물이다.
이곳은 열두 분의 성도가 무참하게 일본군의 총에 목숨을 잃은 곳이다.
일본군들은 마을 청년들의 명단을 가지고 일일이 확인하며 모두 모이라고 한다.
청년들과 성인 남자들 23명이 모였고 그중에 기독교인인 열두 명이었다.
일본군들은 23명의 남자들을 예배당 안에 가두고 밖에서 예배당 문을 걸어 잠그고 교회에
불을 질러 23명 모두 죽음에 이르도록 하였다.
가까스로 한 명이 탈출하였으나 곧 잔인무도한 총부리에 사살되었고
남편들을 찾아 두 명의 여인들이 교회로 달려왔는데 그 여인들도 무참히
죽였다.

주여.. 이곳에 다시 복음의 불꽃이 피어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현재 제암교회는 당시의 비극을 잊지 않기 위해 복원되어, 역사교육의 장소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외관은 평범한 시골 교회처럼 보이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총탄 자국과 화염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의 참혹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교회 내부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와 사건의 전말을 담은 전시물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특히, 현장을 재현한 모형과 당시 사진 자료들이 생생하게 전시되어 있어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울림을 줍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교회가 단순히 피해의 역사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용서와 화해’**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태극기를 따라 계단을 올라가면 일본군의 돌아가신 분들의 합동 묘지가 있다.
묻힐 뻔한 이 사건은 수촌리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 수촌리로 가던
스코필드가 "제암리에서도 학살 사건이 벌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제암리로 달려가 상황을 파악하여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스코필드는 유골을 수습하는 한편 제암리 학살의 증거들을 사진으로 찍고
《꺼지지 않는 불꽃(Unquenchable Fire)》이라는 보고서를 저술해
전 세계에 제암리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을 폭로했다.
제암리 학살 사건이 알려져 국제적 여론이 악화되자 일본은 제암리 학살을 지휘한
아리타 중위에게 30일의 중근신 처분만 내리고 사태를 덮으려고 했다.
그러나 제암리 학살 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일본에 대한 세계의 여론은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제암리 방화사건에 연루된 군인들은 30일간 근신처분을 받았고
나중에 군법회의 결과 살인, 방화에 대해 무죄 처분을 받았다.



스코필드 선교사와 그의 자전거를 조각으로 만들어 두었다.
암흑처럼 어두웠던 조선 땅에 복음 들고 들어와 이 나라 곳곳에
학교를 세우고, 병원을 세우고, 복음을 전했던 수많은 선교사님의 헌신은 말로 다할 수가 없다.
제암리교회의 참상을 전세계에 알린 것은 다름 아닌 스코필드선교사였다..
.

아래는 스코필드 선교사의 활동을 새긴 비석으로 한글과 영어로 되어 있다


제암리교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화성독립운동기념관
화성시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화성시독립운동기념관.
이곳은 19세기 후반 개항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독립을 향한 화성 사람들의 저항과
이에 따른 일제의 집단학살 등의 역사를 조명한다.
2024년 개관을 한 화성독립운동기념관은 상설전시와 기획전시가 열리는데
화성시의 독립운동 자료와 제암리교회 순교 자료를 한 곳에 모아 전시를 하고 있다.



건축이 참 멋지다는 생각......







불타는 제암리교회를 영상으로 만든...



광복절과 부민관 폭파 의거 80주년을 기념한 전시회
'조문기의 시한폭탄은 아직 터지지 않았다'가 전시되고 있었다.




1945년 7월 24일
광복을 얼마 남기지 않는 그날
독립운동가 조민기, 유만수, 강윤국 등 3인의 부민관 폭파사건은
일제의 패망 직전 항거한 마지막 폭파사건이었다.


그런가 하면 이렇게 나라를 팔아먹는 매국노가 들끓고 있었으니
박춘금 역시 그중의 한 사람이었다.
최악의 매국노..
마침 부민관에서 박춘금이 연설을 하고 있었던 그 시간
조문기를 비롯 3인은 독립을 위해 목숨을 걸고 항거하며 투쟁을 하였다.
박춘금의 후손들은 절대 이곳에 올 수가 없을 것이다.
이렇게 역사는 흐르고 흐르는 것이다.
여러 가지 감회가 새로운 전시였다.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피 흘리고
목숨을 바쳐 싸운 고귀한 희생을 어찌 다 알 수 있으랴마는 이번 관람을 통해
조문기라는 독립운동가를 만났다.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화성독립기념관에 화성의 독립운동 자료와 함께
제암리교회 순교의 역사가, 그 현장을 암시하는 영상으로만 조명된 것은 아쉽다.
이왕에 제암리교회를 재건하고 새롭게 건축했으면 교회 지하나 어디라도
교회 자체적으로 그 역사의 자료들을 보관 전시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아침부터 안산 대부도 종이미술관, 방주교회, 점심,
화성 제암리교회, 화성독립운동기념관까지 둘러보니 오후 4시가 다 되어간다.
청주로 오면서 오산 물향기수목원을 관람하고 집으로 GO..... GO....
전곡항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제부도의 신비의 바닷길... 모세의 기적처럼 갈라진 바닷길을
걸으려 했던 계획이 좀 동선이 왔다 갔다 해서 그냥 온 것이 좀 아쉽기로
보람찬 하루였다.... 하루 여행 경비를 보내준 아들에게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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