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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양원목사 순교기념관 소재지; 전남 여수시 율촌면 신풍리 1 (애양마을)
솔로몬의 부귀와 지혜보다 욥의 고난과 인내를
더 고귀하게 여겼다던 손양원 목사님의 순교기념관을 찾았습니다.
여수에 도착하면서 이정표가 헷갈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양원병원이란 이정표만 보면서 여수공항을 한바퀴 돌듯이 찾아 올라가면
언덕위에 자그마한 교회가 나타납니다.
바로 저 곳이 손양원목사님이 시무하시던 애양원교회(현 성산교회)입니다.
손양원목사님이 시무하시던 애양원 교회(현 성산교회)의 전경입니다.
성산교회(애양원교회)는 미국 남장로교 한국 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의 선교 활동으로 시작되었던 교회입니다.
벨 목사와 오웬 목사가 파송 되었고
1904년 12월 25일 성탄예배를 시작으로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1916년 이후 이곳으로 찾아드는 한센병 환자가 늘어나게 되고
1924년에는 560명에 달하게 됩니다.
1934년 4월 4일 예배당이 재건되고
1935년 당시 애양원 원장인 윌슨 박사가 본원의 이름을 애양원이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의
기념비가 교회앞에 세워져 있습니다.
손 양원목사님의 순교기념관입니다.
순교자는 말이 없어라
그래서 더 눈부신 빛깔
잠든 영혼을 일깨우네.
손 양원목사님은 이런 분입니다.
함양출신인 목사님은1939년 7월 14일에 여수 애양원 2대 담임목사로 부임합니다.
손 목사는 신학교 시절부터
항일정신과 신사참배를 반대한 인물이었습니다.
특히 예배시간마다 신사참배의 부당함을 설교 하시다가
1940년 9월 25일 일제에게 끌려가 3년의 옥고를 치르게 됩니다.
해방과 함께 출소하고 신앙을 불태우고 있다가 1948년 10월 25일 여,순사건으로 동인,동신형제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후 아들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시고 그들을 양자로 입적시켰습니다.
안재선이라는 사람을 손재선이라 하여 자신의 아들로 삼았고
전도사로 키워내는 놀라운 사랑의 역사를 보여 주게 됩니다.
한국전이 나자 피난 가시는 길에 홀로 남으시어
1950년 9월 13일 공산군에게 체포 되시고
1950년 9월 28일 저녁11시 여수 근교 미평에서 총살당하여 순교를 하시게 되었습니다.
당시 목사님의 나이는 48세였습니다.
손양원목사님과 사모 정양순 여사묘지와
잃어버린 두 아들 동신 동인의 묘지입니다.
애양원병원의 전경이네요^^*
애양원병원은 내과,정형외과,피부과의 진료를 봅니다.
특히 한센병(나병)치료로 유명한 병원입니다.
1939년7월14일 부임당시 애양원 사택 앞에서 찍은 가족 사진입니다.
당시에는 손목사님의 아버지 손종일장로님도 함께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제외하고
자기의 처자보다,자녀보다
심지어는 자신의 일신보다
애양원의 한센환우들을 더 사랑하신 손 양원목사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위해 열심을 다하는지 곰곰히 생각해 볼 일입니다.
어쩌면 하나님보다 사회를 더 사랑하지나 않는지요^^*
찾아가는길 경부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순천IC->여수방면(국도17호)->여수공항->애양원
남해고속도로->순천IC->여수방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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