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논산 한옥마을과 돈암서원은 아래위로 붙어 있다.

먼저 한옥 마을로 들어가본다.

한옥 마을은 앞쪽은 수리가 한창이다. 

뜨거운 여름날 배롱나무 꽃을 찾아 돈암서원까지 왔다

 

서원에는 관심 1도 없던 내가 말이다.

별일이다.

 
 
 

논산한옥마을은 넓은 대청마루를 무대로 펼치는 문화체험촌,
전통한옥의 멋을 지닌 한옥생활체험촌, 현대기술을 접목한 한옥생활 체험촌 등 3촌으로
구성하여 최소 1개부터 3개의 방으로 구성된 7세트 12 객실로
30여 명이 동시에 숙박을 할 수 있다.

한옥의 아담하고 고즈넉한 정감을 느낄 수 있는 논산한옥마을은
샤워실과 화장실 등 편의성이 잘 갖추어져 있으며
논산시민은 50% 할인이 되며 논산시 사이버시민도 3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논산한옥마을은 연중무휴로
운영된다




 
 
 

 
 
 

 
 
 

 
 

 
 

 
 
 

 
 
 

우리가 방문한 날도 여러 가족이 한옥에서
주말을 보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화려한 숙박도 좋지만 이렇게 고즈넉한 한옥에서의 하룻밤도 좋겠다는 생각
 
 

 
 

돈암서원 입구
 
돈암서원은 2019년 7월 6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16~17세기에
건립된 다른 8개 서원과 함께 오늘날까지 한국에서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어 온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며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맞게 바뀌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한국의 서원'이라는 이름으로
한국의 14번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다음백과)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임리에 있는 서원. 1634년 김장생을 배향하여 건립했으며,
김집, 송준길, 송시열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다. 1660년 사액선원이 되었다.
 

사적 제383호. 1634년에 창건되었으며 기호학파의 거두인 김장생의 위패를 모셨다.
1660년(헌종 1년)에 사액을 받았으며, 충청지역을 대표하는 서원이다.
김장생의 아들인 김집을 비롯하여, 송시열과 송준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가당인 응도당, 양성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으며
이밖에 장판각, 정의당, 고직사, 사당인 유경사를 두고 있다.
1881년(고종 18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남았던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이다.
 
당시 서원이 부패의 온실이었다고 한다. 하여 1.000여 개의 서원중
47개만 남기고 모두 헐어 버렸다고 한다.(다음백과)
 
 

 

 
 
 

김장생은?
영종 3년 1548년 서울에서 출생해서 1631년 인조 9년에 세상을 뜬 학자로
예학의 태두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 이론적 배경은 이기혼융설이다.
그의 예학론은 임진왜란 이후 혼란해진 국가기강을 바로잡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통을 바르게 하는 것'에 중점이 두어졌다.
 
이러한 정통주의적 예학론은 이후 집권세력의 정치이념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김장생은 이이에게서 주자학을 전수받아 그 학통을 계승했다.
특히 그의 성사상을 이어받아 학문의 요체로 삼았으며,
이기심학관을 계승하여 일원적 이기심학관을 견지했다.
격물치지설에서도 율곡의 설에 따르고 있었다.

 
 

 
 
 
 
 
 

문이 닫혀 있어 들어가지 못했다.
담장 넘어 배롱나무꽃이 화사하다.
 
 

 

꽃담장은 궁궐 같은 공간에 연출된 독특한 정통 담장인데
숭례사를 둘러싼 꽃담장은 이곳이 특별한 공간임을 알려준다.
 
 

 
 
 
 
 

 
 
 
 

 
 
 

홍살문 지나 바로 앞마당에 베롱나무 한그루가
꽃을 가득 담고 있다.
 
하늘도 어여쁘고 꽃도 어여쁘다.

 
 

 
 
 

 
 
 
 
 
 

 
 
 
 
 
 

 
 
 

2006년에  복원된 산앙루 누각
잘 보면 어린이가 있는데
"내가 날도 더운데 아빠 따라 왔구나"
"몇 학년이야?"  하니 초등 6학년이라고
아빠가 하는 말인즉 아들이 서원에 관심이 많아 방학을 하면 전국의 서원을
 찾아다닌다고..

"와 저의 손자는 5학년인데 아직 철부지인데... 대단하다" 
"다 관심이 다르지요 그래야 이것저것 먹고살죠." 아빠의 대답이다.
 
 

 
 
 

 
 
 

홍살문을 지나 나오는 길이 한여름 따가운 햇살이 어찌나
뜨겁던지 땀이 줄 줄이다.
 
 
 

 

 
 
 
 

말을 타고 오는 선비들이 여기서
내려야 한단다. 남편의 열강이 이어지는데
"어여 갑시다. 뜨거워유~~.."

 
 

주차장 옆에 맥문동이 보라보라~~~ 피어 있다.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