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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톤즈"
내전 중인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료 선교를 하던 중
암으로 세상을 떠난
故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다룬 다큐 영화
"울지마 톤즈"
엇그제 월요일 장성의 의자왕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우리부부가 함께 본영화다...
한 사람의 헌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줄 수 있는지...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 하셨던 이 시대의 성자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故 이태석 신부님..
영화를 보는 동안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이 메이고...
눈물이 줄줄 흐르는...
"울지마 톤즈"
그는 아프리카 수단 사람들에게 의사였고, 신부였고,
선교사였으며, 교사였고, 건축가 였고, 지휘자 였으며,
친구였고, 부모였으며...
아니 세상 어떤것으로도 설명이 안되는 그들이 희망이었다...
48세! 흔히 우리들이 말하는 참으로 짧은 그의 삶이었지만
세상의 그 어떤 사람보다도 위대한 삶의 족적을 남긴 이 시대의 작은 거인 故 이태석신부님을 만났다.
가난한 집안의 10남매 중 아홉 째로
태어났지만
그의 나이 9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삯바느질을 하시는 어머니는 그들 10남매
모두 올바른 사회인으로 키우셨다..
특히나 그가 의과대학에 입학했을 때
어머니는 아들이
대통령이 된것보다 더 기뻤다고....
의대를 졸업한 아들은 집안의 기둥이자
희망이었을 터,
어쩜 그의 어머니의 고단한 삶을 내려 놓을
수 있는 부푼 기대를 가졌을 수도...
.하지만 그는 신부가 되기로....
위로 두 형제가 신부님이요 수녀인누나가 있었기에.. 어머니는 반대하셨다.
남의 자식이 신부가 된다 하면 다 거룩해 보이고 훌륭해 보이는데... 어찌하여 내 자식은 몇 명이나 데려 가시냐고 반문도 했다고.. 그런 어머니에게 "남들처럼 효도도 못하고 벌어다 드리지도 못해 죄송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자꾸 끌리는걸 어떡하느냐고" 이렇게 울면서 말하는 아들.. 결국
그런 그가 신부 서품을 받고 아프리카로 떠난다고 하자 여기에도 가난하고 소외된 돌봐 줄 사람이 많은데
어찌하여 아프리카 가느냐고 또 만류하시는 어머니...
하지만 역시...나쁜 길로 빠진 사람들도 많은 데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기로 한 아들이기에 다시 받아들여야 했다고...
버려진 땅 검은 대륙 아프리카 수단...황폐할 대로 황폐해진 곳..
어디를 봐도 희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검은 피부를 가진 수단 톤즈 사람들...
수단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큰 나라이지만 내전으로 인하여 모든게 황폐했고 말라라이와 콜레라등으로
약도 치료도 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다..
톤즈에서 그는 유일한 의사였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버려진 삶을 사는
그곳 사람들에게 그는 의술로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를 만나면 살 수 있다는 소문으로 하루에 300여명의 혼자들이
찾아오고 멀리는 100km를 걸어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
손수 벽돌을 찍어서 병원을 짓고 환자들을 보는데
하루 24시간이 부족하리 만큼 많은 환자들이
몰려온다....
하루종일 일하고 잠깐 잠이 든 밤 시간에 찾아오는
환자들도 단 한 번 그냥 보내는 법이 없이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그는 그곳 사람들의 구세주였다..
지역 곳곳으로 진료를 다니며 만나는 결핵환자들..
그들을 위한 결핵 환자의 마을을 만들고
특히나 한센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의 친구가 돼주고...
그는 그들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유일한
외부사람이었다
발가락이 잘려 나간 뭉그러진 발...
맨발로 다니기에 늘 상처 투성이의 그들의 발을
보며 신발을 신기기로하고...
평생 신발이라곤 신어본 일이 없는
아니, 신발을 구경도 못한 그들에게 한센병으로 인하여
발 모양이 다 제각각인 그들의 발을 하나씩 그려
캐냐에서 가죽신을 만들어다 신긴것이다...
이것은 이들에게 놀라운 기적같은 일이었다..
물론 전기도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지붕에 태양열 집열기를 설치하여전기를 만들었다.
그렇게 전기를 원한 것은 다름아닌 뜨거운 고열을 견디지 못하는 약품이나 백신을
보관 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전기를 만들어 냉장고에 백신을 보관하는 것이다...
신부님은 학교도 지었다..
전쟁으로 폐혜가 된 그곳에서 미래가 없는 아이들에게 물고기를 잡아 주기보다는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했다고...
성당을 먼저 지을 것인가? 학교를 먼저 지을것인가 생각해봤지만 예수님도 성당 보다는
학교를 먼저 지으셨을 거라는 확신에 학교를 지었다...
역시 손수 아이들과 마을 주민들과 함께 한 마음으로 학교를 지어 12학년
우리나라의 초, 중, 고에 해당하는 교과 과정을 가르쳤다.
캐냐에서 교사들을 데려왔고 신부님도 바쁜 시간을 쪼개 직접 아이들을 가르쳤다..
톤즈의 아이들은 거기에 미래를 찾았고 꿈을 키워갔다..
톤즈 사람들은 그를 "쫄리신부"라고 불렀다.
존 리( john Lee)"라는 세례명을 그들은 그렇게 발음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신부에게 물었다.
"왜 굳이 신부가 됐느냐고",
"의사로서도 소외된 이웃을 도울 수 있다고.."
"왜 굳이 아프리카까지 갔느냐고,"
"한국에도 가난한 사람이 많은데..."
그 모든 물음에 이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다..
"예수님께서 지극히 보잘것 없는 사람에게
바로 나에게 해준것이다"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신부님이 톤즈에서 한 많은 일들 중에 기적같은 또 하나의 일은 악기라곤 생전 보지도 못한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쳐 브라스밴드를 조직한 것이다.
가난한 어린시절 자신을 지탱해준 한가지가 바로 음악이었음을 알기에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고자 직접 책을 보며 악기를 배우고...
밤이면 악보를 만들고..
그리하여 그들이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를 어눌한 발음으로 노래를 부르며 연주하는 모습이라니...
또 지인의 도움으로 생전 처음으로 반짝반짝 빛나는 장식이 달린 단복을 입으며
놀라워 하고 신기하는 모습은 감동 그 자체였다...
수단에서 처음으로 35인조 브라스밴드를 만들어 연주를 할때 수단의 대통령도
만족해하며 여러 행사에 초대되어 연주를 하는 톤즈의 유명인사들이 되기도...
그런 신부님이 잠시 귀국하여 지인의 권유로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대장암 말기라고...
뿐만 아니라 암세포는 벌서 신부님의 몸 곳곳에 퍼져 있었다...
그 마지막 말을 듣고 신부님은 낙담했다고..하지만 그 낙담은 자신의 삶이 다해서가 아니라
아직도 톤즈에 할 일이 많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라고..
그저 담담히...."우물을 파다 왔는데...약품들도 쌓여 있는데..."
그리고 정말 돌아 가려고 했다고...모든 이들의 만류에 투병을 시작했고...
암 선고 1주일 후...
수단의 아이들을 돕기 위한 작은 음악회...
그의 어디에서도 암선고 그늘은 찾아볼 수가 없다..그리고 그의 동생과 함께 기타를 치며
"꿈의 대화"를 노래하는 모습은 꿈처럼, 불꽃처럼 살았던 자신의 노래였으리라...
투병 중에도 수단의 상황을 알리고자 "내 친구를 아시나요?"책을 출판했고 2명의 밴드부 단원을
한국으로 데리고와 학교에 유학을 시켰다..
16번의 항암에도 늘 그 선한 미소를 잃지 않고 꿋꿋하게 투병에 임했지만 결국 신부님은 하늘의 부름을 받으셨다..
신부님이 돌아 가셨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는 톤즈 아이들..
아니 꿈이라고 말하는 아이들...신부님의 마지막 보습, 그리고 장례식 영상을 보며 아이들은 통곡했다
눈이 안보이는 한센병 장님 할머니는 "신부님이 그리워 밤낮으로 운다"고 하며 신부님의 사진에 입맟춤을 한다...
그리고
신부님은 가셨지만 우리는 하느님을 믿을것이라고한다..
"어찌하여 이렇게 재능이 많고 아직도 할 일이 많은 신부님을 데려 가셨는지...
나는 70살인데 나를 불러 가셨으면 기쁘게 갔을거라고 하지만 이 모든게 신비라고.."
월요일에 이어 오늘 오전에 또 바나바팀장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
엇그제 보다 더 많은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인다..
세상에 정의를 말하고 사랑을 말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진정 그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극히 적다
멀리 갈것도 없이 나를 보자 "입만 열면 생명을, 사랑을 외치지 않는가?
그저 나, 내 자식, 내 남편, 그저 나...나...내 울타리, 내둥지 밖에 모르는 나..
내 자식 조금 더 좋은 교육 시키고자, 조금 더 잘 입고, 잘 살고자, 아둥거리며 발버둥치며 살아갈 때
내가 살고 있는 지구의 저 반대쪽 뜨거운 검은 대륙에서 버려진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몸속으로 죽음의 암세포가 전신으로 퍼져가는 시간에도 아픔을 , 피곤을, 외로움을 느낄 수도, 느낄 사이도 없이
그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불꽃같은 삶을 던진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말자...
한겨울 추위가 몰아치는 오늘...두 볼을 타고 뜨겁게 흐르던 눈물을 잊지말자..
그리고 오늘도 하나님의 부름에 따라 가족, 친지, 고향을 떠나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이름없이, 빛도 없이 주의 사랑을 전하는 많은 선교사님들이 있음을 잊지말자....
그리고 작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붙여주신 생명들이 있음을 잊지말자..
그 생명을 돌보고 사랑하며 세우는 일에 내 삶의 최고의 가치가 있음을 잊지말자..
영화가 시작되는 처음에 신부님이 색소폰으로 연주한 "그 때 그사람"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이 노랫말을 흥얼 거리다가 그만 목이 메인다..
양평의 수도원에서 투병중에 낙엽이 떨어지는 늦가을에 투병환자들과 가진 작은 음악회
신부님이 열창하신 " 태워도~~`태워도~~~재가 되지 않는 진주처럼 영롱한 사랑을 태우리라..."
자신의 온 삶을 던져 그렇게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살다가신...신부님...
굳이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신 신부님..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불꽃같은 48세의 눈부신 삶을 살다가신 신부님..
오늘의 내 삶이 너무도 부끄러워..흐르는 눈물조차 버거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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