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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

 

한 가문에서 4대에 걸쳐 열 한 분의  순교자가 나온 믿음의 명문 가문이

바로 김대건신부님 가문이다.

비가 올듯 구름이  많고 바람이 쌀쌀한 날

나무향 그윽한 성지를 돌아보며 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곳이다.

 

 

 

 

 

 

신유박해로 인해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증조 할아버지인 김진후(비오)는

1801년부터 감옥을 드나들기 시작하더니,

1804년에는 체포되어 해미로 압송되었고, 해미성지에서 10여 년간의 옥살이

끝에 1814년 옥사하였다.  또한 작은 할아버지인 김종한(안드레아)는 1816년 안동에서

체포되어 대구 관덕정에서 참수 당하였다.

 

기해박해의 여파로 김대건 신부님의 아버지 김제준(이냐시오) 성인은 아들을 서양에 사제 수업을

받게 하기 위해  유학을 보낸 중죄인으로 체포되어 혹독한 고문 끝에 1839년 서울 서소문 밖에서

참수 당하였으며, 당고모였던 김 데레사 성녀는 앵베르 주교의 처소를 돌보며 신앙을 전파하다

체포되어  1840년 초 서울포청에서 교사 당하였다.

 

 

 

 

 충청도 솔뫼 출신의 김대건은 신학교 생활을 마치고 선교사의 조선 입국로를 개척하던 중

 1845년 8월 17일 중국 상해에 위치한 진쟈샹(金家港 김가항) 성당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는데,

이로써 최초의 조선인 사제가 되었다.


이후 바닷길을 통해 페레올(Jean-Joseph Ferreol)주교님, 다블뤼(Davely)신부님과 함께 지금의

 강경에 잠입하여 사목활동에 투신한 그는 1846년 선교사의 입국을 위한 항로를 탐색하던 중

백령도 부근에서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었고, 혹독한 고문과 조정의 회유 속에서도

신앙을 굳건히 증거하다  같은 해 9월 16일 서울 한강변 새남터 모래사장에서 순교하였다.


1846년 병오년에 일어난 박해이기에 병오박해라 일컬으며,

한국의 첫 사제였던 김대건 신부님의 체포를 계기로 가톨릭교에 대한 박해가

다시금 일어나 현석문을 비롯한 신자들이 순교하게 되었다.


병인박해 당시 김대건 신부님의 사촌들과 친척들은 공주황새바위에서 순교하였다.
1866년에는 김제항이, 1869년에는 김진식과 김근식이, 1873년에는 김제교가 순교함으로 인해,

김대건 신부님 집안은 4대에 걸쳐 11분의 순교자를 배출하는 신앙의 명문이 되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내포를 ‘충청도에서 제일 좋은 땅’이라 하였다.
‘내포’는 바닷물이 육지 깊숙이까지 들어와 포구를 이루어 배들이 드나들며
새로운 문물을 전해주는 장소이다. 

 

내포를 비롯하여 서해안 여러 지역에는 1784년 이승훈 세례 이전부터
중국으로부터 건네지는 서학 내지 천주교 문화와 신앙을 접하고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확산되었던 실학사상의 분파인 서학이
내포 선비들의 관심사가 되었다.

 

내포의 서학자들은 서울의 실학자들과 교류를 하면서 내포의 양반, 중인,

서민 등 모든  계층에서 천주교로 발전하였다.

김대건 신부님의 10대 선조인 김희현이 아산 현감을 역임하면서 가문이

내포와 인연을 갖게 되었다.

9대 선조인 김의직이 충청병마절도사를 지내며 임진왜란에서 전훈을 세우자

가문이 대대로 토지와 벼슬을 보유하게 되었다.
사헌부감찰과 통훈대부를 지낸 8대 선조인 김수완 때부터 가문은 솔뫼에
거주하기 시작하였다. 

1784년경 김대건 신부님의 백조부 김종현과 조부 김택현이 내포 사도 이존창의 

 권유로  서울 김범우의 집에서 교리를 받고 천주교에 입교하자 가장인 증조부

김진후(비오)도  입교하여 가문이 천주교 신앙으로 귀의, 솔뫼를

 ‘내포 신앙의 못자리’로 만들었다.

 

김 신부님 가문은 천주교 신앙에 귀의한 후 잦은 박해로 가족들이 여러 차례
투옥되고 고문을 받다가 순교까지 하여 솔뫼를 ‘순교자의 고향’으로 만들었다.

1906년부터 합덕본당 주임 크렘프 신부님은 솔뫼를 성역화하기 위하여

인근의 토지매입을 시작하였고,

1945년에는 백 빌리버 신부님이 솔뫼에 김대건 신부 복자비(福者碑)를 설립하였다.

 

1973년부터 솔뫼 성역화 사업을 계획적으로 시작하여 1982년에 대전교구

순교자 신앙을 가르치고 전하는 ‘솔뫼 피정의 집’을 건립하여 솔뫼성지를

순교자 신앙의 학교’로 삼았고, 국가와 지자체의 도움으로 2004년에는 김대건 신부님 생가를 복원,

2005년에는 김대건 신부님 기념관을 건립하여

이제 솔뫼성지는 ‘순교자 신앙과 문화의 전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솔뫼성지 홈피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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