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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이 이렇게 성지가 많은것을 몰랐다.

특히나 천주교 성지가 많다.

신리성지에 이어 이번에는 합덕성당이다..


마치 성지순례 온것 같다..

마음도 차분히 가라앉고 영적 감성도 충만이다.


가을 햇살에 빛나는 합덕성당..

그 기품있는 품위가 어찌나 빛이 나던지...


신리성지와 또 다른 분위기다

신리성지에서는 마음이 가다듬어 지고

절로 숙연해 지는...... 큰 소리도 내면 안될 것 같은 ...

숨소리조차 조심스러웠다면


합덕성당은 마치 유럽에 와서 성지순례를 하는듯한 약간의

들뜨고 설레는 ...아마도 성당의  그 멋진 기품에서 나오는 분위기 때문인지도..











1929년 건축된 고딕 양식의 천주교 성당이다. 

구 합덕성당의 전신은 고덕면 상궁리에 설립된 양촌성당으로 귀뜰리에 신부가 현 위치에 합덕성당을

 건축하여 이전하고,  합덕성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그 뒤,

 신 압덕성딩이 분할되었으며 그 후 다시 합덕성당으로 환원되었다.(펌)








아~~





언젠가 KBS의 "단 하나의 사랑" 이라는 드라마 촬영지라고 하는데

드라마를 안봐서 ...









































































당진 합덕 성당은 1929년 충청남도 당진시 합덕읍 합덕리에 건립된 천주교 성당 건물이다. 

건축 당시 주임이었던 프랑스 선교사 페랭(Philippe Perrin)[한국명 백문필] 신부는 

합덕에 부임하면서 기존의 성당이 너무 좁아 새 성당을 새로 지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페랭이 부임하던 1921년에 합덕 성당의 신자 수가 2,000명을 넘은 상태여서 새 성당 건립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페랭 신부는 1925년경부터 새 성당의 건축을 계획하였다.

 페랭은 ‘돌로 지은 성당[église de pierres]'이 아닌 ‘영혼의 성당[église des â̂mes]'이 

지어지기를 바라며 신자들과 함께 기도하면서 신축금을 모았다. 

신자들이 적지 않은 성금을 모아 봉헌했지만 건축비의 상당 부분은 페랭 신부가 마련하였다. 

국내외의 지인들에게 도움을 받고, 자신의 생활비를 절약하여 모은 돈과 미사 예물을 성당 신축에 헌납하였다.

성당 건축은 1929년 3월 봄부터 시작되었다. 

성당 터의 나무를 베고 정지 작업을 함과 동시에 중국에서 불러온 기술자들이 1만 200장의 벽돌을 구웠다. 

건축을 위해 중국인 기술자들이 26명이 동원되었는데, 

그들 중 벽돌공이 8명, 목수가 3명이었다. 신자들도 적극적으로 노동력을 제공하였다.

 정지 작업은 물론 벽돌을 굽고 나르는 일 등을 여러 가지 일들에 순번에 따라 돌아가며 봉사하였다.

성당은 1929년 가을에 완공되어 10월 9일 봉헌식을 가졌다. 

봉헌식이 있던 날을 전후하여 합덕 주변은 수천 명이 모여들어 장사진을 이루었다. 

완공되었을 때의 모습은 장방형으로 양쪽 측면의 출입문과 통로, 제대 뒤편의 제의방, 

그리고 첨탑의 삼각 지붕이 없었다.

 이 부분들은 1940년경 일본인 기술자들에 의해 증축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합덕 성당 건물은 1998년 7월 28일 충청남도 기념물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당진 합덕 성당 [唐津合德聖堂]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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