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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6. 3 월요일
꼬마 숙녀 가이드로 제주 4박 5일이 좀 무리였는지
몸이 피곤, 피곤
 

6월 2일 주일도 여전히 피곤... 오후예배를 패스했다
그런데 6월 3일, 월요일 또 집을 나갔으니..
 
바로 천안에 농막이 있는 장권사가 농막에서 바베큐도 할 겸 가자고 ~~
하여 천안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안성 죽산성지에 먼저 갔다.


아주 오래전... 죽산성지의 장미를 보고 참 좋았던 기억이
문득 생각 나서 장미가 만개하기를 기다렸다가...
 
 

죽산 성지 주차장... 주차장에 예수님이 두 팔 벌려 우릴 맞아주신다.


 
 

성지로 들어가는 입구...
 
기와를 얹은 담벼락을 따라 걷자 ‘성역’(聖域)이라는 현판 걸린 커다란 

대문이 세워져 있다. 
속(俗)의 세계를 벗어나 성스러운 영역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우린 여기로 안 가고 위로 올라가서 한참 헤매었다.
 

 

성지 입구다.

 
 

위로 올라가서 이리저리 헤매었다는...
언제 어딜 가도 장소를 정하고 가이드는 항상 나다.
 
이 사람들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이다
오늘 이 안성 죽산성지는 어떤 곳이고 왜 오는지 묻지도 않는다.
 

이곳은 안내도에 나와 있는 것처럼 순교자 성지이다.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교우들이 처형되고 심문과 고문을 하던 곳이다.
충청·전라·경상도로 갈라지는 주요 길목인 죽산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조선 시대에 도호부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현재 죽산면사무소 자리에서 천주교인들이 참담한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
여기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은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그 이름이 밝혀진 이만해도 25명에 이른다. 
 
 무차별하게 천주교인들을 끌어다가 처형하던 당시 상황으로 보아
순교자들이 더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夷陳) 터다.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竹州山城)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이다.
그래서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으로 불려 왔던 것이다. (네이버_)
 
 

 
 
 

병인박해를 지나면서 이진터는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 터]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죽산에는 또 두들기라는 곳이 있는데
옛날에는 인가가 드문 작은 주막거리였다고 한다.
이 주막거리는 용인, 안성, 원삼 등지에 사는 교우들이 포졸에게 잡혀 가는
호송길에  잠시 쉬어 가는 곳이 되곤 했다.
 
포졸들이 돈을 주면 풀어 주겠다고 회유를 하고, 돈이 없다고 하거나
풀어 주는걸 원치 않는다고 하면 마구 두들겨 팼다고한다.
교우들은 두들겨 맞고, 가족들은 원통함에 땅을 치고,
하여 두들기가 됐다고한다.
 
 

 
 
 

죽산에서의 박해는 잔혹했다. 
부자(父子)를 같은 날 함께 처형하는 것을 국법이 금했음에도 
순교자 여정문(1867년 순교)은 아내와 15살 아들, 
순교자 최성첨(1868년 순교)은 아들과 한날 한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이런 장미 터널이 양쪽으로 두 개가 있다.
아픔의 땅, 순교의 현장을 그저 장미를 보러 왔다는 게 
송구스럽기만 하다.
 
장미는 절정을 살짝 비켜 가고 있었지만 이번 주까지는 나름 괜찮을 듯하다.
다른 곳의 장미가 다 시들해진 걸 생각하면
이만해도 과분하다.
 
 

 
 
 

 
 
 

 
 
 

 
 

 
 
 
 

푸른 잔디밭이 널따랗게 자리한 성지 광장. 양옆으로 돌 묵주알이 줄지어 서 있고 
장미 넝쿨이 반원 모양으로 묵주알을 감싸고 있다.
 
 묵주기도의 길 곁은 장미 터널이다.
 5월 성모성월의 끝 무렵이면 장미가 만개해 장관을 이룬다.
 
 

순교자들을 위로하는 충혼탑이다.
 
 
 

약간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아 상이다.
이 뒤에서 사진을 찍으면?
 
 

이런 모습이다.
여기서 다들 멋진 사진을 찍던데 폰으로는 이 정도밖에...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그늘에서 이야기 삼매경에 ~~
 
우리는 이 그늘에 앉아 시간 가는줄 모르고
과연 믿은 무엇인가?
이 믿음을 끝까지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순교의 현장에서 그렇게 믿음을 지킬 수 있었을까?
아내와 자식까지 함께 한자리에서 처형이라니..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천주교, 개신교, 이런 게 뭐 그리 중요한가?
 
 

 
 
 




 

 
 
 

 
 
 

 참혹했던 피의 순교가 이뤄진 땅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향연. 
 
그리고 그 아름다움 안에서 기도하고 묵상할 수 있는 
믿음의 자유가 주어져 있음에 감사한다. 
피의 순교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개인이든, 가정이든, 나라든
피 흘림이 없는 열매란 있을 수 없다.
 

 

어디를 보아도,
어디에다 눈을 돌려도 성지를 둘러싸고 있는
3면이  모두 장미로 눈이 호강을 한다.
 
죽산은 꽃이 지지 않는 성지라고 한다. 
봄에는 개나리, 진달래와 영산홍, 조팝나무 꽃이 만발하고, 
여름에는 장미가, 
가을에는 코스모스와 들국화, 
겨울에는 눈꽃과 함께 사시사철 푸른 소나무가 꽃을 대신한다
 
다가오는 가을날 돗자리 깔고 김밥이랑, 과일, 커피를 들고 
다시 오자고,
느긋해지는 내 믿음의 신발끈을 조인다.
 

성지 밖으로 나오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과
여인들이 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주여~나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늘도 예쁘고 바람 시원했던 죽산성지의 붉은 장미들이
아름다웠던 날... 하여 천안 가기 전 최고의 장소로 안내를 했다는 동료 권사들의
지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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