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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첫주 연휴에 다녀온 진주 진주성이다.

남편이 진주성을 가보고 싶다고 하여 진주성을 둘러보고

감악산 아스타국화 축제를 보러 가기로 했다.

 

진주성은 삼국시대에는 거열성, 통일신라시대에는 만흥산성, 고려시대에는 촉석성,
조선시대 이래로는 진주성 또는 진양성으로도 불렸다.
현재 성내에는 국립진주박물관 · 진주성 임진대첩 계사 순의 단 · 의기사
창렬사 · 호국사 등의 시설과 유적이 있다.

고려시대 말기인 1377년 빈번한 왜구의 침범에 대비하여 진주성을 토성으로 쌓았는데,
2년 뒤인 1379년(고려 우왕 5)에 진주목사 김중광이 돌로 쌓는 도중 왜구의 침입이 있었고,
왜구가 퇴각한 후에야 성곽 축조를 마무리했다.


1593년 진주성을 함락시킨 일본군은 성을 무너뜨려 평지를 만듦으로써
진주성의 흔적을 지웠다.(다음백과)
 

진주성에 들어가니 유등축제 준비로 분주한 모습들이었다.

 


 

 

 

 

유등 축제는 10월 6일부터라고 했으니 지금쯤 축제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겠다.

다음에는 유등 축제를 꼭 보고 싶다.


 

충무공 김시민 장군 동상.
 
1592년 10월 5일 김시민 장군은 군사 3,800여 명으로
호소카와 등이 이끄는 일본군 2만여 명의 공격을 받아 10월 10일까지 6일간 싸워 이를 물리쳤다.
호소카와 다다오키, 하세가와 히데카즈, 가토 미쓰야스가 선봉에 선 일본군은
수적 우세와 조총 등 신식 장비를 앞세워 공격했으나 진주목사 김시민의 지휘를 받은
조선군의 방어벽을 뚫지 못하고 막대한 피해를 입고 패하여 물러갔다.
이것이 제1차 진주성전투이다
 

육상전투에서 연이어 패배하던 조선군은 제1차 진주성 전투에서 크게 승리했고,
결과적으로 곡창지대 호남지방을 지킬 수 있었다.
한편에서는 이순신 장군이 남해에서 일본 수군을 격퇴하고 있었고,
충청도 금산 지역에서는 조헌이 분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주성은 2차 전투에서 1593년 6월 29일 함락되었다.
주성이 함락될 무렵 일본군은 이리 쫓기고 저리 몰려다니며
우왕좌왕하는 백성들에게 창고로 들어가면 죽이지 않겠다고 소리쳤고
이에 살아남아 있던 군졸과 백성들이 창고로 들어가자 그대로 불을 질러 불태워 죽였다.
 대부분의 지휘부가 남강에 투신, 자결했다.
일본군에게 밀려 촉석루로 온 조선군은 맞아 죽거나 남강에 투신했다.

성 안에 있는 시체는 촉석루에서부터 남강 북안에 이르기까지 서로 겹쳐 있었고,
청천강으로부터 옥봉의 강가에도 시체가 가득했다.

성이 함락된 후 도망가 숨어 있던 서예원은 붙잡혀 참수되었으며
그의 목은 소금에 절여져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내졌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서예원의 목을 김시민의 수급인 줄 알았다.

처절한 역사의 기억을 간직한 진주성은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었다
 
 
지난 5월 김시민 장군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들에게 한 적이 있어서
 김시민 장군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었다.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김시민장군이다.
흔히 충무공 하면 이순신 장군만 생각하게 되는데 김시민장군도 충무공이다.
 
 

 

 

 

 

진주성하면 먼저 촉석루가 떠오른다.
 
진주성 안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물이 2층 높이의 촉석루이다.
촉석루는 전시에는 군사를 지휘하던 장수의 공간이었고,
평시에는 풍류를 즐기던 선비의 공간이었다.
‘촉석루’라는 명칭은 강 가운데 돌이 우뚝 솟아 있다 하여 붙인 이름이며,
‘남장대’ 또는 ‘장원루’라고 부르기도 한다.
 
 

 

 

 

촉석루에서 바라본 남강..
 
 

 
 
 


 

 
 
 

임진대첩 계사순의단

계사순의단은 제1차 진주성 전투(1592)와 계사년인 1593년의 제2차 진주성 전투 때
순국한 7만 군관민의 호국영령을 기리기 위해 진주시민의 소망을 담아
문화공보부와 진주시가 1986년 12월에 착공하여 1987년에 12월에 준공한 제단이다
 
 

 

 

 

 

좌측의 비가 “김시민 장군 전공비”이고 우측은 “촉석정충단비”
 참고로 촉석정충단비는 임진왜란 당시 계사년(1593)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의
충정과 전공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세웠다고 한다.
 
 
 
 

 

의기사~~ 논개 사당


진주 의기사는 논개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촉석루 입구에서 뒤쪽으로, 촉석루 옆에 자리하고 있다.


 


 
 

의암 (논개 바위다.)

 

이곳은 진주 의암이 있는 곳으로

의암은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함락되자 의기 논개가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져 죽은 바위다.

 

 

 

의암 옆에는 작은 비석이 누각 안에 있다.

'의기 논개지문'이 누각에 보관되어 있다

1722년에 의암사적비를 세워 논개의 의로운 행적을 기록하였다고 한다.

 

 


 
 

 
 

영남포정사 문루는 진주성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건물로

조선시대 경상우도 병마절도영의 문루이며 망미루라고도 불렸다.
 

 

 

 
 
 

경절사 내부, 경절사는 경상남도 진주시 남성동 진주성 내에 있으며, 

고려의 문신 하공진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향례를 받드는 사당이다.
 
 

 
 
 

 경절사 가는 길에 붉은 꽃무릇 군락이 있어

올해 못 보고 갈뻔한 꽃무릇을 많이 보았다.
 
 

 

 

 

 



 

 

 

 

청주에서 오후 1시 반에 진주로 출발했으니

진주에 도착하니 벌써 4시가 넘었다.

이번 진주성 방문은 김시민장군의 그 뜨거운 조국애를 만나고

가는걸로 충분하다는 남편,

 

진주 국립박물관을 보려 했으나 시간이 없어 다음에 가기로 하고

진주에서 40분 거리의 사천 딸 집에서 하룻 자고 감악산을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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