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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우디의 마지막 작품, 성가족 성당 ^^


두 번째 서른~스페인 여행..

달달한 환갑 부부의 스페인 성가족 성당...



 1909년, 가우디는 고급 연립 주택 ‘카사 밀라’를 짓고 있었어 물결이 일렁이는 듯

부드러운 곡선 형태로 건물은 다 지었지만 옥상에 올릴 성모상이 완성되지 않아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있었지.

  

그런데 큰일이 생겼어. 그 무렵 바르셀로나에는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이 많았는데,

참고 참던 이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일자리를 돌려 달라며 시위를 벌인 거야. 건물이 불타 무너지고,

다쳐서 실려 가는 사람들로 시내는 꼭 전쟁터 같았어.


 



시위가 이어지는 동안 가우디는 시내 곳곳에 지은 건물들 걱정에 뜬눈으로 밤을 새웠어. 

 무엇보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던 ‘성가족 성당’이 큰 걱정이었지.

노동자들은 돈만 밝히는 성직자들에 대한 분노로 시내 곳곳의 성당에 불을 질렀거든.




일주일 만에 시위가 끝나자 가우디는 부리나케 성가족 성당으로 뛰어갔어. 

 성가족 성당은 바르셀로나의 어느 사업가가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이 모여 휴식을 취하고 기도할 수 있는 성당을 짓자.’라고

결심하고, 1882년에 모금을 통해 짓기 시작한 곳이야. 가우디는 이 성당의 건축을 맡은 책임자였어.

“후유, 성당이 무사해서 정말 다행입니다.”

물끄러미 성당을 쳐다보는 가우디 곁에서 조수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어.





불에 타 무너진 다른 성당이나 귀족의 집과는 달리 성가족 성당은 조금도 피해를 입지 않았어.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생활 터전인 이곳을 스스로 보호했기 때문이야. 

성가족 성당은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모금한 돈으로 짓고, 일하는 사람들도 모금한 돈에서

품삯을 받았기 때문에 이곳을 함부로 망가뜨릴 수 없었던 거지.

‘이번엔 성당이 무사했지만, 앞으로 또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여기는 아이들이 놀이터 삼아 뛰어놀고, 사람들이 집처럼 편히 느끼며 일하는 성당이 되어야 해.’





가우디는 한참을 말없이 서 있다가 뭔가 결심한 듯 주먹을 꽉 쥐었어.

곧 가우디는 성당의 신부와 수도사들을 만나서 자신의 계획을 이야기했어.

그건 바로 성당 건물 한쪽에 학교를 세우는 것이었지.

“시위로 성당 건축도 늦어졌는데, 학교를 짓겠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돈 걱정 하지 않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면 좋지 않겠어요? 아이들이 부모 곁에서 학교를 다니며 마음껏 뛰놀면

안심하고 더 열심히 일할 것이고요.”

처음에는 고개를 갸우뚱하던 사람들도 가우디의 이야기를 듣고는 깊이 공감했어.



그뿐이 아니야. 가우디는 성당 입구와 벽면에 새길 조각상들의 모델을 가까이에서 찾았어. 

벽돌공, 대장장이, 미장공 등 주변 어디에서나 쉽게 마주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모델 삼아

성서에 나오는 인물들을 표현했지.

어느새 성당은 사람들의 삶 한가운데로 들어와 있었어.

“공사장 옆 텃밭에서 채소를 길러도 된대.”
“난 벌써 기르고 있다네. 아이들 걱정도 없고, 먹을거리 걱정도 없으니 일을 해도 힘든 줄 모르겠어.”

가우디는 즐겁게 일하는 사람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어.

1918년부터는 가우디의 삶이 온전히 성당에 맞춰졌어. 성당 외에 다른 건축물은 짓지 않았고,

1925년부터는 성당 건축 사무실에서 먹고 자며 생활했어. 그리고 카사 밀라를 완성하고

받은 돈을 모두 성당에 기부했어. 돈이 떨어지면 직접 거리로 나와 모금도 했지.




“신을 믿는 사람들이 가족처럼 함께 힘을 모아 일하고 성당을 지어야 합니다.

작은 뜻을 보태 주십시오.”

가우디의 마음이 통했던 걸까? 성당을 찾는 발길이 하나둘 늘었고,

돈을 낼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노동으로 마음을 보탰어.


“돈을 낼 형편은 못 되니 저는 돌이라도 나르겠습니다.”
“저도 시켜 주십시오. 몸은 불편해도 문지기라면 할 수 있습니다.”

노인들은 물을 떠 오거나 촛불을 켜면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로 도왔어.

저마다 자신의 몫을 다했지.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보며 가우디는 눈시울이 뜨거워졌어.

돈이 떨어지면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지만, 성가족 성당은 바르셀로나 시민들과 성당 건축이

완성되길 바라며 찾아오는 사람들의 도움으로 차근차근 모습을 드러내었어.






하지만 가우디는 끝내 성가족 성당을 자신의 손으로 다 짓지 못했어. 1926년 6월,

저녁 산책을 나갔다 전차에 치여 세상을 떠났거든.

숨을 거두기 직전까지 성당 건축을 걱정하며 자신의 전 재산을 성당에 기부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가우디는 눈을 감았지. 가우디의 장례식은 아주 성대하게 치러졌어.

동료와 친구는 물론 바르셀로나 시민들까지 가우디의 죽음을 슬퍼하며 마지막 길을 함께했어.




지금 가우디는 성당 지하에 잠들어 있어.

그리고 가우디의 뒤를 이은 건축가들이 성가족 성당을 계속 짓고 있지.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가우디 건축물에 담긴 가치를 찾기 위해 이곳을 찾아오고 있단다.

가우디는 고향 카탈루냐의 자연과 그 속에서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사랑했어. 

 “나의 스승은 자연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가우디에게 있어 건축은 사람이 머물며 살아가는

공간을 자연과 어우러지게 가꾸어 내는 예술이었던 거야.


[네이버 지식백과]  (질문으로 시작하는 초등 인문학, 2017. 01. 10., 오늘, 최미선, 이형진)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가우디는 뺑소니 전차에 치였다고,

하지만 가우디의 형색이 너무도 초라하여 감히 이 사람이 가우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가우디는 많은 피를 흘리던 중..누군가의 손에 의해 보건소로 실려 갔는데

거기서 그를 받아 주지 않아 여기저기 세 군데의 병원을 떠돌다가 어느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치료를 했는데 사흘 후에 깨어났다고....

의사가 당신 이름이 뭐냐고 묻자...그가 "나는 가우디요"

이 말을 듣고 너무도 놀란 의사가 큰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고 한다.ㅠㅠㅠ



















































































 성가족 성당은 순전히 시민들의 모금으로 지어지기 때문에

돈이 있으면 짓고, 돈이 없으면 공사가 중단 된다고..


어쨋든 2020년 완공이 목표라 하는데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언제 완공이 될지 모른다고..

뭔가 신비로움을 유지 하면서 계속 관람객을 오게 할거라나?


이렇게 둘째 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이동이다..

오늘 밤은 어떤 호텔에 머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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