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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서른 기념 스페인 여행.


5월 2일, 스페인 세비야성당,


누에보 다리에서 1시간 남짓 잠깐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버스를 탄다.

세비야로 이동이다.




아침, 저녁으로 일기차가 많이 난다.

아침에 론다로 떠날때는 바람이 많이 불고 쌀쌀했는데

오후가 되자 기온이 급 상승한다.


현재 밖의 온도가 36도한다.




스페인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그 유명한~사실 이 건

스페인을 오고 나서 알았다.

세비야가 이렇게 유명한 곳인줄..














세비야 성당은 유럽에 있는 성당 중 세번째로 큰 성당이다.


가장 큰 규모의 성당은 바티칸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San Pietro Basilica)이고

두 번째는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Saint Paul's Cathedral)이다.

대성당이 있는 자리에는 12세기 후반에 이슬람 사원이 있었던 곳이다.

이슬람 사원은 사라졌지만 넓은 폭의 형태는 메카에 가까울수록 좋다는

이슬람 사원의 영향이다.


두 번째 크다는 영국에 있는 성당을 못봤다는건 내가 아직 영국이란 나라를 가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영국이라...흠..ㅎㅎ




건축은 1400년경 직사각형의 모스크 토대를 기반으로 시작되었으며, 완공되는 데에는 100년 이상이 걸렸다.

원래의 모스크에서 남아 있는 부분은 '파티오 데 로스 나란호스'(오렌지 나무 안뜰)라는

이름의 현관 안뜰뿐인데, 한때는 이슬람 신도들이 샘에서 손과 발을 씻던 장소였으며

1184년에서 1196년까지 미나레트가 세워지기도 했다.


1198년에는 미나레트 꼭대기에 구리로 만든 네 개의 구체()가 올라갔으나

1356년 일어난 지진으로 파괴되고 말았다.

성당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옛 미나레트에는 종이 설치되고 기독교의 상징인

십자가가 덧붙여져 교회 종탑으로 변했다



















바로 이 사진이 콜롬버스의 무덤이다.


이탈리아 출신의 항해사였던 콜럼버스는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기 위해

후원자를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스페인 왕국의 여왕 이사벨을 만나게 됩니다.

이 당시 유럽에서는 인도로 가는 길은 험난한 알프스 산맥을 넘어 아라비아 사막을

지나가는 육로밖에 없어서 가는데만 수개월이 걸리고 가는길이 매우 위험해

가다가 죽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당시 유럽에서는 인도산 향신료인 후추등이 폭발적인 인기에 있었고 유럽의 모든 국가들은

그 향신료를 차지하기 위해 인도로 가는 새로운 항해로를 찾기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죠.

.


사실 이곳은 인도가 아니라 중앙 아메리카  바하마제도 였던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사벨 여왕과의 약속을 져버리지 않기 위해 빈손으로 돌아갈수있는 상황이 아니었죠

할수없이 유럽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담배,고구마,야자,마등의 토산물들을 챙겨

다시 7개월만에 스페인으로 돌아옵니다.

콜럼버스는 신하들의 의심을 받았지만 이사벨여왕의 신임덕분에 위기를 모면하였고

심지어 신항로 개척의 공로를 인정받아 제독의 지위까지 얻게 됩니다.

이렇게 콜럼버스는 3번의 항해를 다 떠났지마 모두 인도를 찾는데는 실패하고 맙니다.



그러던 1504년 그의 후원자였던 이사벨 여왕이 갑작스레 죽게되자 뒤를 이은 페르난도 2세가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이사벨여왕이 죽자 신하들은 기다렸다는듯 콜럼버스를 사기꾼으로 몰아 처형해야 한다고

주장하게 된거죠

페르난도 2세는 콜럼버스의 재산을 모두 빼앗고 지위마저 박탈해 버립니다.

한순간에 모든 부와명예를 잃은 콜럼버스는 말년에 비참하고 쓸쓸히 프랑스의 작은

병원에서 있다가 1506년 임종을 앞두고 가족들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게 됩니다.

절대 죽어서도 스페인 땅을 밟지 않겠노라고 무시무시한 말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게 되지요

이에 유가족들은 유언에 따라 신대륙 쿠바에 그의 시신을 묻어줍니다.


그 후 392년이라는 세월이 지나 1898년 스페인령이었던 쿠바가 독립하게 되자

스페인 당국은 콜럼버스의 유골이 훼손될것을 우려해 스페인으로 가져와

매장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던거죠 바로 콜럼버스의 마지막 유언때문인데요

스페인 정부는 고심끝에 묘안을 생각해냈고 그것은 바로 유골이 땅에 닿지 않게

하는것이었습니다.

4개의 조각상이 관을 떠받들고 있는 형태로 특별제작되었고 이렇게 콜롬버스의

유언을 지켜주었습니다.

인도를 찾아 떠났던 콜럼버스의 항해는 비록 실패로 끝났지만 신대륙 발견이라는 큰 업적을 남겼고

비록 신대륙에서 원주민들을 학살했다는 양면성도 존재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가 위대한 탐험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건 무슨 표시인지?

???














성당 안에 있는 오렌지 공원이다.정원을 통과하면 성당 안의 용서의 문이 나오고

이 용서의 문을 지나면 재입장이 불가하니 잘 살펴봐야 한다.


결혼한지 4개월 된 신부가 혼자 스페인을 왔기로 항상 같이 다녔다.

남편이 교사라서 하와이에서 한 달간의 신혼여행을 마치고 또 여행을 간다고 시부모님께

말씀드리기가 쉽지 않았지만 흔쾌히 다녀 오라고 하셨다고..


혼자 온 33살 총각과 또 혼자 온 50대 프리랜서  방송작가와 함께...

우리 사진도 많이 찍어 준 고마운 친구(?)다..





 



 



 셀카봉으로 찍었더니 셀카 기술 부족으로.....




 




 




 





 

세비야 성당을 보도 우리는 마차를 타고 세비야 골목골목을 보는

세비야 마차투어를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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